게임에서 레벨업이 갈수록 오래 걸리는 이유

게임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시작하고 처음 몇 판은 레벨이 눈에 띄게 오르는데 레벨이 높아질수록 같은 시간을 써도 숫자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.

이 속도 차이가 우연히 생기는 건지, 설계가 만든 결과인지 궁금하실 거에요. 그래서 경험치 곡선 세 가지를 같은 조건에 놓고 가상 플레이어 12만 명에게 레벨 60까지 달리게 직접 실험해봤습니다.

마지막 구간에 몰린 시간

세 곡선 모두 레벨 60까지 평균 3,000판이 걸리도록 맞췄는데도 시간이 쓰이는 자리는 크게 달랐는데요. 레벨 50에서 60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10번의 레벨업이 전체 시간에서 차지한 비중은 선형 곡선이 30.8%, 제곱 곡선이 42.4%, 지수 곡선이 61.7%였습니다.

지수 곡선에서는 3,000판 가운데 약 1,850판을 이 구간에 쓴 셈이죠. 레벨 59에서 60으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판수도 선형 100판, 제곱 149판, 지수 274판으로 격차가 벌어졌습니다. 하루에 20판씩 한다고 치면, 이 마지막 구간에만 지수 곡선은 약 93일, 선형 곡선은 약 46일이 걸리는 계산 결과입니다.

경험치 곡선 3종의 레벨당 필요 판수와 마지막 10번 레벨업 비중

비교 조건은 이렇게 맞췄다

레벨 n에서 n+1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경험치는 곡선마다 다르게 정해놓았는데요. 선형은 레벨에 비례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선이고, 제곱은 레벨의 제곱에 비례하며, 지수는 레벨이 오를 때마다 10%씩 늘어납니다.

지수 곡선의 증가율은 올드스쿨 런스케이프 위키가 레벨당 약 10%씩 늘어난다고 설명한 값과 동일합니다. 한 판에 얻는 경험치는 평균 100에 변동계수 0.3으로 흔들리게 했고 곡선마다 비례 상수를 조정해서 레벨 60까지의 평균 판수가 모두 3,000판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. 평균은 수식만으로도 나오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은 판마다 경험치가 달라질 때 플레이어끼리 도착 시점이 얼마나 벌어지는지 확인하려고 돌려보았습니다.

초반은 제곱 및 지수가 훨씬 빨랐다

레벨 10에 도달한 판수의 중앙값은 선형이 77판, 제곱이 13판, 지수가 15판이었습니다. 레벨 10만 보면 제곱과 지수 곡선이 선형보다 5배 이상 빨랐죠. 레벨 30에서는 738판, 366판, 162판으로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.

레벨 50까지는 선형이 2,077판, 제곱이 1,728판, 지수가 약 1,150판이 걸렸습니다. 지수 곡선은 총 시간의 38%만 쓰고 레벨 50에 도착했으나 거기서 레벨 60까지는 나머지 62%가 남아 있었죠. 총 시간이 같다면 후반이 무거운 곡선은 초반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데요. 레벨업이 느려지는 건 총 시간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같은 시간이 뒤쪽에 몰려서였습니다.

경험치도 같이 올려봤다

실제 게임에서는 높은 레벨의 전투가 더 많은 경험치를 준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. 그래서 레벨이 1 오를 때마다 한 판의 경험치가 기본값(100)의 2%만큼, 즉 2씩 늘어나는 조건으로 다시 시뮬레이션을 직접 돌려봤습니다.

레벨 60까지 걸린 판수는 선형 1,742판, 제곱 1,632판, 지수 1,548판으로 감소하였고 마지막 10번의 레벨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5.6%, 37.6%, 57.4%로 줄어들었습니다. 그래도 지수 곡선은 61.7%에서 57.4%로 4.3%p 줄어드는 데 그쳤습니다.

하지만 이 증가폭은 제가 정한 가정이고 실제 게임의 곡선과 보상 구조는 이 세 가지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주시길 바랍니다.

도착 시점은 곡선이 정했다

한 판의 경험치가 30%씩 흔들리는데도 레벨 60에 도착한 판수는 10%에서 90% 구간이 2,979판에서 3,022판이었습니다. 중앙값 3,000판에서 ±1%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죠. 경험치가 불규칙하게 들어와도 평균으로 수렴해서 어느 플레이어든 거의 같은 판수에 같은 레벨에 닿았습니다.

올드스쿨 런스케이프 위키에 따르면 레벨 99까지 필요한 경험치는 13,034,431이고 레벨 92까지 쌓은 경험치(6,517,253)가 그 절반입니다. 레벨은 7개 남았는데 필요한 경험치는 절반이 남아 있는 구조이죠.

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레벨 숫자가 곧 진행도라는 직감이 이 곡선 앞에서 가장 크게 틀린다고 봅니다. 이번 실험의 지수 곡선에서는 전체 레벨업 59번 가운데 마지막 10번이 시간의 62%를 가져갔습니다. 운이 도착 시점을 거의 바꾸지 못한다는 것은 곡선이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의 속도를 사실상 미리 정해 둔다는 뜻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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